
이번 유로 2012는 강팀이 총망라 된 B조와 비등비등한 4팀의 A조만이 죽음이 조는 아닌것 같다. 스페인,이탈리아의 무난한 8강행이 점처졌던 C조도 크로아티아의 활약으로 안개 정국이 됐다. C조 마지막 두 경기인 '스페인 대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대 아일랜드'전의 결과에 따라 이미 2패를 당한 아일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세 팀의 희비가 엇갈린다. 최강 스페인도 8강행을 장담할수 없다. 스페인이 크로아티아에게 지고 이탈리아가 아일랜드를 잡는다면 크로아티아와 이탈리아가 1승 2무로 8강에 올라간다. 크로아티아와의 조별예선 3차전은 스페인의 '유로 2연패' 여부가 달린 첫번째 난관이다.
<출처: 골닷컴>
스페인이 독일만큼의 완벽함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지만, 점점 살아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특히 델 보스케 감독의 전술적 유연함이 돋보인다. 이탈리아와의 조별예선 1차전서 제로톱의 비효율성을 체감한 델 보스케는 아일랜드전에서 다시 토레스 카드로 바꿔 꺼내들었고, 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토레스는 실바, 이니에스타, 챠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2골을 성공시켰다. 확실한 방점이 없어 우왕좌왕했던 1차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1차전 스페인은 공격 집중도에서 산만함을 겪어야 했다. 파브레가스가 결국 해냈지만 초반엔 실바, 후반엔 이니에스타의 난사로 결정력 부족에 시달렸다. 2차전에서 토레스는 전성기 때 모습을 보여줬다. 순간 가속도로 치고 나가 마무리한 첫 골 장면은 유로 2008 결승전의 재연이었다. 두 번째 골은 특유의 침착함이 돋보였다. 토레스는 비야가 빠진 스페인의 확실한 No.1 공격 옵션으로 자리잡았다.
델 보스케는 크로아티아전서도 토레스를 적극 활용할 공산이 크다. 토레스의 상승세가 첫번째 이유라면, 두번째는 크로아티아 중앙라인인 쉘덴필드-촐루카가 뒷공간 수비에 그리 능한 센터백은 아니라는 점이다. 전성기 때 스피드를 되찾아가는 토레스가 맘놓고 피치를 올렸을때, 막을수 있는 중앙수비수는 그리 많지 않다. 발이 좋은 우측풀백 스르나의 커버링이 보태진다면 크로아티아로선 이익이 되겠으나, 그럴 경우 이니에스타가 왼쪽에서 놀수 있는 공간적 여유가 많아지기 때문에 크로아티아로선 난처한 상황에 처해질 것이다. 이 때문에 크로아티아는 아일랜드를 상대로 펼친 공격적인 4-1-3-2(이날 크로아티아 허리는 부코예비치를 홀딩 미드필더로 놓고 모드리치를 그 위에 올려 보다 자유로운 역할을 부여했다. 페리시치와 라키티치는 보다 측면으로 벌려 옐라비치-만주키치 투톱의 활용도를 높였다.) 올리보단 이탈리아전에서 꺼내든 4-4-2 혹은 허리를 강화한 4-2-3-1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

크로아티아가 이탈리아전에서 택한 전술은 모드리치로 하여금 후방 플레이메이커와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부코예비치와 짝을 이뤄)을 병행케 하는 것이었다. 또 특이한 점은 라키티치와 페리시치의 위치를 바꿨다는 것이다. 수비라인은 변동사항이 없었다. 이것은 이탈리아의 강력한 미드필더와 투쟁하기 위한 대처법이었지만 결과론적으로 큰 소득을 보진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이탈리아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둔 것은 훌륭한 일이긴 하다.) 가장 큰 이유는 모드리치의 역할 과부하에 있다. 모드리치의 공격적 기여도는 1차전에 비해 떨어졌다. 모드리치가 창의성에 기반한 미드필더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를 허리 깊숙히 포진시키는 방안은 그리 효율적인 선택지는 아니다. 게다가 모드리치는 포백을 광범위하게 커버할만큼 왕성한 체력을 지니지도 못했다. 그럴경우 라키티치와 페리시치의 중앙 지원적 움직임이 필요하게 마련인데, 이는 또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올릴수 있는 이 둘의 능력을 제한하는 셈이 된다. 스코어상 비기긴 했지만 전체 시너지를 고려했을때, 가장 합리적인 조합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로아티아는 허리가 강력한 스페인을 맞아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둘 확률이 높다. (일리치 감독도 인터뷰서 "스페인전 중원에서 3명 정도의 변화가 있을것"이라고 밝혔다.) 드물겠지만 이럴경우 기존의 투톱 대신 원톱체제로 전향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앞선 두 경기에서 투톱을 고집했기 때문에 만약 원톱을 둔다면 이는 상당히 모험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필자 생각에 원톱의 적임자는 이미 세골을 올리며 절정의 골감각을 보여주고 있는 만주키치다. 그렇다면 옐라비치가 처진 스트라이커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로 내려가거나 이 자리 원주인인 모드리치가 올라오게 되는데, 역시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합리적인 대안이다. 이 경우 '부코예비치를 보좌할 한명의 파트너 누구인가'가 마지막 전술 퍼즐의 한 조각으로 남는다.(피지컬과 중거리포가 좋은 크란차르도 꽤나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결국 두 팀의 경기는 '창의 다양한 공격동선을 막는 방패라인의 효과적인 움직임'으로 귀결될것 같다. 스페인을 상대하는 어느 팀이든지 중앙 블록을 두껍게 하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상대적으로 공격에 비해 수비가 약한 크로아티아에겐 더욱 공감이 되는 이슈이다. 크로아티아가 '전술 트렌드세터' 스페인을 상대로 또 어떤 대응방법을 마련할지 지켜보는 것도 C조 마지막 경기를 관전하는 또 다른 흥미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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