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박지성' 김보경이 결국 잉글랜드 2부리그 카디프 시티에 둥지를 틀게 됐다. 김보경이 홍명보호에서 물오른 기량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그의 거취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실제로도 이적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중에는 EPL 중위권 클럽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보경은 경기 출전의 기회가 많은 카디프를 택했다. 어떻게 보면 김보경은 모험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선수로서 꾸준한 출전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경기력 유지'라는 측면에서는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팬들은 그의 선택에 격려보다는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유가 있다. 가가와가 맨유로 이적하고 박지성, 이청용의 위상이 과거보다 떨어진 상황이다. 김보경은 이에 대한 팬들의 실망감을 보상해 줄 대한민국의 차세대 에이스였다. 그런 그의 행보치고는 기대 이하였다. 필자로서도 상당히 아쉽다.




하지만 이미 결정된 일이다. 어찌 됐건 김보경은 또 다른 도전길에 나섰다. 팬들 입장에선 그가 더 과감하게 도전을 못했다는 부분이 아쉬울거다. 하지만 김보경의 선택도 어느정도 존중해야 된다. 결국 그가 택한 길이다. 김보경이 J2리그 오이타 트리니타와 J리그 세레소 오사카까지 이미 한번의 업그레이드를 경험했기에, 그의 선택은 일면 더 현실적일수 있다. 긍정적인 부분은 그가 어느 팀에 있었든 제 몫을 해냈다는 점이다. 꾸준함과 성실함은 과거의 커리어로도 이미 입증됐다. 멘탈도 좋은 편이다. 젊은 그가 보다 더 모험적이지 못한건 아쉽지만 겸손하고 노력하는 선수다. 김보경의 새 도전을 기대하는 이유다.
세간에선 김보경을 이야기할때 박지성을 빼놓지 않는다. 플레이 스타일과 성실함 등 닮은점이 많다는 이유다. 프로 초년 시절을 J리그에서 보냈다는 점도 비슷하다. 김보경으로선 '진행형 레전드' 박지성과 비교되는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영광일거다. 언론과 팬들이 김보경을 박지성의 후계자로 부르는 건 그에 대한 기대심의 반영이다. 그러나 김보경과 더 흡사한 바이오그래피를 가진 선수는 따로 있다. 바로 설기현이다. 김보경은 앞으로 설기현을 롤모델로 삼아야 할 듯하다. 김보경의 도전길은 앞으로도 박지성보다는 설기현을 닮을 공산이 크다. 두 선수의 개척루트는 평행이론처럼 맞물린다. 김보경이 도르트문트, 벤피카, 스포르팅 리스본 등 타국의 1부무대로 갔다면 그의 경기 출전빈도와 활약에 따라 박지성과 같은 행보를 기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잉글랜드 챔피언쉽 무대를 택했다. 현 시점에서 그의 발자취는 오히려 설기현의 그것과 닮았다.
혹자는 설기현의 해외 경력을 실패로 보기도 한다. 떠밀린듯한 인상이 짙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부분이 없다고도 볼수 없다. 레딩 시절 이후로 설기현은 하향세였다. 설기현은 2006-2007시즌 레딩 승격 첫해 초반 돌풍의 장본인이다. 그렇지만 설기현은 중반 이후 특유의 부침을 겪었고 당시 레딩 감독이었던 코펠과의 불화로 다음 시즌 풀럼으로 이적했다. 그 이후 설기현은 내리막길을 걸었던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필자는 이같은 이유가 설기현의 축구 인생에서 큰 마이너스 요소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도전과 경험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설기현은 우리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거의 없었던 2000년대 초반, 해외리그 개척 판로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설기현은 용기있는 개척자였다. 설기현은 광운대 시절, 안정이 보장된 국내 리그를 마다하고 미지의 땅인 벨기에 주필러 리그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의 도전은 성공했다. 거친 벨기에 리그서 97경기 30골 (앤트워프 25경기 12골, 안더레흐트에서 72경기, 18골)을 넣으며 리그 정상급 공격수로 우뚝 섰다. 그때 설기현의 나이 22살이었다. 설기현이 이미 국가대표로 활약할 때였지만 그의 도전기는 2002 월드컵서 인생 절정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전에도 이미 현재진행형이었다.
더 대단한 점은 월드컵 이후 그의 행보다. 2004년까지 안더레흐트에서 뛰던 설기현은 또 한번 용단을 내린다. 나이가 들기 전에 더 큰 무대에 도전하고 싶었던 그는 외려 안더레흐트 보다 한수 아래로 여겨지는 팀인 잉글랜드 챔피언십의 울버햄튼 행을 결심한 것이다. 그가 울버햄튼 행을 결정한 이유는 돈보다 비전이었다. 당시 울버햄튼은 1부리그 진입을 바라보는 챔피언십 상위권 전력이었다. 설기현은 울버햄튼에서도 특유의 기복이 있었지만 성실함으로 극복했다. 결국 설기현은 이듬해 1부리그 진출팀 레딩 사상 최대 금액인 10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프리미어리거의 꿈을 이뤄냈다. 비록 EPL 최하위 팀이었지만 6년간 주목받지 못한 리그에서 머물다 최상위 무대에 우뚝 선 순간이었다. 설기현의 끈기와 뚝심, 그리고 성실함이 낳은 결과였다.

김보경이 비록 플레이스타일면에선 박지성을 닮았을 지라도, 커리어 면에선 설기현과 더 유사점이 많다. 언급했듯 김보경은 일본리그 세레소와 오이타에서 팀과 성장을 함께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잉글랜드 2부리그 카디프라는 가시밭길을 택했다. 팬들은 젊은 김보경이 도전정신이 부족하다고 폄하할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카디프가 그의 축구인생 발판이 될수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설기현이 이미 그같은 성공신화를 먼저 쓰며 길을 텄다.
카디프는 비록 3년째 플레이오프에서 좌절했지만 지속적으로 투자를 늘리는 팀이다. 투자는 팀의 비전과 무관치 않다. 벨라미 영입설이 김보경에게 영향을 미칠지언정, 좋은 선수의 꾸준한 영입은 팀의 1부리그행에 긍정적 신호다. 김보경의 활약이 카디프의 1부행으로 귀결될 경우, 이만큼 좋은 시나리오는 없다. 하지만 팀이 2부에 머물더라도 희망은 있다. 선수의 미래에 있어 소속팀 등수만큼 중요한 건 선수 본인의 활약도다. 선수 개인의 팀 기여도와 공격포인트는 몸값의 바로미터다. 카디프가 2부에 머물더라도 김보경의 반등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이는 김보경의 성실성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그같은 전례를 설기현에게서 보았다. 둘의 공통분모는 밑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헝그리 정신'과 '적응력'이다. 설기현이 챔피언십에 입성한 나이가 26살이다. 물론 그 같은 경우는 대한민국의 2002 월드컵 4강 진출로 군문제가 해결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쉽거나 이른 도전은 아니었다. 24살의 김보경도 마찬가지였을것이다. 더군다나 군문제가 걸린다. 김보경의 결정이 오히려 설기현보다 더 어려웠을수도 있다. 김보경의 용기없음을 폄하하기 보단 그의 선택을 용단이라고 보고 격려의 응원을 보내는 건 어떨까.
덧글
설기현의 실패라 보이는 그런 부분은 감독과의 그런 의견차에서 좁히지 못한 것 뿐 아니라 그때 떠나지 못했다는 것이 크죠. 안쓰면 그리고 쓴다는 비전도 안보여주는 감독 밑에서는 선수들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그냥 감독 말 들으면서 기회를 기다리던가'. '아니면 옮기던가' 이 두 선택을 제때 못한게 설기현의 실패죠.
그런 부분을 김보경은 더 생각해야지 지금 가는 팀이 상위권이 아니네 뭐네 하는 주변의 바람들어가는 소리를 귀기울이지 않길 바랄 뿐이죠.
카디프는 분명 챔피언십에서만큼은 좋은 팀에 속하지만 이전 김보경 영입에 적극적이었던 스토크시티로 가는 편이 더 나은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스토크시티의 거친 축구에 김보경 같은 스타일은 희소성이 있다고 봅니다.
세레소와의 의리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에이전트가 카디프보다는 나은 계약을 끌어낼수 있다고 보는 입장인데 참 아쉽습니다. 뭐 내부사정은 잘 모르는 일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