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보호를 둘러싼 모든 정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고갈된 체력, 해결사의 부재, 히든카드의 실종 등의 대표팀의 발목을 잡고 있다. 더군다나 다음 상대는 개최국 영국이다. 경기장까지 이동거리도 상당하다. 대표팀은 악명 높은 카디프 원정을 치러야 한다. 수만 홈관중의 야유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반면 영국은 점차 나아지고 있다. 첫 경기 세네갈전은 우려를 낳기에 충분했으나 경기를 거듭할수록 팀으로써 뭉치고 있다. 양 팀의 기본 전력차에 둘러싼 상황들은 대표팀을 더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어쨌든 홍명보호로선 승부를 걸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걸 고려한 현실적인 승부수를 띄워야 된다는 생각이다. 대표팀은 중원 쪽의 체력 저하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허리 주축 구자철, 기성용, 박종우는 과부하가 걸렸다. 다른 지역에서 이 셋의 활동량을 배분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애초에 홍명보호의 걱정은 공격 보다는 수비였다. 공격진은 예선전에 세네갈, 뉴질랜드를 상대로 날카로움을 보였다. 반면 수비는 황석호, 김창수의 뒤늦은 합류로 조직력에 의구심을 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수비보다는 공격이 걱정이다. 한 방이 없다. 측면은 잠잠하고 박주영은 부진하다. 수비는 김창수, 윤석영의 안정감과 중앙 미드필더 트리오의 1차 저지로 비교적 단단해 보인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이들이 넓은 활동폭을 커버하는 만큼 활동량이 누적되면서 체력 걱정을 안게 됐다. 이는 곧 공격뿐 아니라 수비적으로도 문제의 소지를 낳을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영국은 완벽하지 않다. 잘 짜여진 계획하에 힘과 전략의 배분을 한다면 충분히 해볼만한 상대다. 필자가 영국의 최근 4경기를 지켜본 결과, 그들은 뻥축구의 오명은 어느정도 벗어났지만 여전히 약한 고리를 안고 있다.

1. 버틀란드와 리차즈의 딜레마 - 예선 2실점의 수비력은 맹신할게 못 된다
영국의 수비는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의 애초 걱정보다는 좋아 보인다. 하지만 어딘가 질서 정연하지 못할 뿐더러 허술한 느낌도 든다.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리차즈의 역할 부적응, 다른 하나는 버틀란드의 느린 수비 커버다. 리차즈는 소속팀에선 주로 측면을 맡아왔다. 이번 단일팀에서도 측면을 본 적이 있다. 리차즈의 센터백 기용은 어찌보면 피어스 감독의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역시 중앙보다는 측면에서 제대로 발휘되는 것 같다.
그것은 예선에서도 입증됐다. 리차즈 쪽에 많은 위험상황이 집중됐다. 코커와의 미스 커뮤니케이션, 상보적인 커버, 라인 콘트롤에서 약점을 노출했다. 리차즈 수비의 특징은 압도적인 피지컬과 왕성한 활동량으로 상대 발빠른 측면 공격수를 무력화 시키는데 있다. 하지만 중앙의 리차즈는 머리카락 뜯긴 삼손처럼 우왕좌왕 하고 있다. 특히 위치선정에 문제를 보인다. 이는 포지셔닝이 장점인 박주영에게는 기회다. 리차즈와 코커를 교란시킬수 있는 박주영과의 스위칭이 필요한데, 김보경과 남태희가 그 역할을 해줘야 한다.
영국 수비 지역에서 또 한곳의 약점을 꼽자면 버틀란드의 좌측이다. 첼시의 챔스 우승을 이끌었던 당시의 폼이 아니다. 경기를 치를수록 수비 호흡이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오버래핑 후 수세로 전환하는 종적 움직임이 썩 좋지 않다. 이와 더불어 오른쪽 오닐도 대인마크에서 종종 실수를 범하고 있다. 한국이 집중해서 노려야 할 부분은 리차즈와 버틀란드 사이의 중앙 좌측 지역이다. 노련하지 못한 버틀란드와 주포지션이 아닌 리차즈의 지역에 간극이 생길수 있다. 백성동과 남태희와 같은 스피드스터가 개인 능력보다 짧고 정확한 원투로 노려볼 수 있는 부분이다.

2. 지친 한국과 중앙 집권적인 영국 - 압박과 포에체킹의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
쭉 언급했듯 한국의 중원은 피곤하다. 반면 영국은 상대적으로 더 낫다. 근본적인 원인은 역할 중복과 과부하에 있다. 한국의 중원이 지쳐있는 이유는 구자철과 박종우의 움직임에 있다. 이번 대회 구자철은 대표팀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공격 뿐아니라 수비서도 상당부분 책임을 지고 있다. 박종우는 기능적으로는 수비에 한정돼 있으나 매 경기 커버하는 범위가 상당하다. 기성용의 유틸리티성을 늘리려면 박종우의 지원이 필수인데, 이는 결국 신체적으로도 완전치 않던 박종우의 체력 저하를 가져왔다.
예선과는 다른 경기 운영을 할 필요가 있다. 멕시코전 한국은 너무 달려들었다. 아퀴노, 파비안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공간을 타이트하게 압박했다. 영국전은 보다 실리적인 움직임을 가져갈 필요가 있다. 영국에도 벨라미, 스터리지가 있지만 순발력과 기동성에선 멕시코의 측면보다 떨어져 보인다. 중원의 강한 프레싱도 필수는 아니다. 오히려 후반에 무너질 수 있다. 현 단일팀에는 스콧 파커 같은 파이터가 없다. 램지, 알렌, 클레버리는 공을 에쁘게 차는 스타일에 가깝다. 만약 선택적인 압박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조 알렌 쪽이다. 확장하면 램지 정도다.
현재 영국의 키플레이어는 긱스도 벨라미도 아닌 조 알렌이다. 거의 모든 공격은 알렌의 발에서 시작된다. 알렌의 패스 정확도가 점점 살아나고 있다. 유로 2012 피를로가 맡았던 후방 플레이 메이커나 사비의 역할을 단일팀에서 해내고 있다. 알렌이 중앙에서 풀어주면서 램지의 측면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도 램지는 UAE전 과거 조콜에 가까운 역할을 보였다. 간헐적인 크로스 시도로 스터리지의 득점 확률을 높이는데 기여 했다.
홍명보호에서 플레이메이킹 역할을 완벽 소화할 수 있는 선수는 구자철, 기성용이다. 하지만 단일팀에는 알렌, 램지, 클레버리가 모두 중앙 전문이다. 벤치의 긱스도 중앙에 능하다. 파이터가 없는 대신, 체력과 역할을 배분할수 있는 자원이 넘친다. 영국은 두 명의 구자철이 더 있는 셈이다. 홍명보호로선 김정우 같은 선수의 부재가 아쉽지만 지금 자원풀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정우영의 투입으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홍명보호의 스타팅이 바뀐다면 중앙 쪽 한자리와, 상대 약점인 세트피스 및 박주영 부진을 풀기 위한 김현성, 지동원 카드를 고려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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