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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PR '늙은 갈라티코'의 지향점은 볼턴이어야 한다 2012-2013 EPL



<조르카예프가 볼턴서 보여준 기술축구는 센세이션이었다. 이청용 영입 전까지 테크니션에 대한 팬들의 갈증은 계속됐다.> 


 1999년의 볼턴을 기억하는가. 지금은 이청용으로 유명하지만 과거 볼턴은 이름만 들어도 화려한 스타들이 즐비했다. HOT, 젝키 세대가 '응답하라 1997'에서 아련한 향수를 느끼는 것처럼, 볼턴의 1999년은 아름다웠다. 1995년 EPL로 승격한 볼턴은 이후 강등과 승격을 반복했다. 볼턴의 전환점은 1999년. 볼턴은 당해 필 가트사이드 회장의 취임과 '볼턴의 아들' 샘 알리다이스가 감독으로 영입되며 2000/2001 시즌 1부리그 승격에 성공한다. 이 시점에 두 인물은 클럽의 명운을 좌우할 주요 사안 두 가지를 제안한다. 그것은 - 1. 더 이상 강등은 없다 2. 그러기 위해선 경험 많은 스타플레이어 영입이 필요하다 - 인데 팀 인지도가 낮고 살림살이도 넉넉지 않았기에 정상급 선수들을 유혹하기란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여기서 가트사이드 회장이 꺼낸 아이디어가 바로 '약간 늙은 갈라티고(Galacticos, 슈퍼스타들을 끌어모으는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 정책)' 정책 이었다. 전성기를 넘긴 왕년의 스타들을 싼 값에 데려온다는 작전이었다. 볼턴의 영입 대상은 나이가 들었거나 현재 소속팀 주전에서 완전히 밀려난 스타플레이어, 또는 아직 팔팔하지만 평소 행실이 안 좋아 모든 클럽이 영입을 꺼리는 악동 스타들 이었다. 첫 번째 작품은 프랑스의 유리 조르카에프였다. 조르카에프는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2000 우승에 빛났지만, 당시 33세로 '끝물' 선수였다. 하지만 1, 2부를 전전하던 볼턴팬들에게 '월드컵 우승 스타' 조르카에프의 존재는 감사 그 자체였다. 조르카에프는 단박에 리복 스타디움의 최고 인기 선수에 등극했고 볼턴은 2001/2002시즌 EPL 잔류에 성공한다. 

 2002년 여름에는 나이지리아의 슈퍼스타 제이제이 오코차와, 당시 카타르에 있던 레알 마드리드의 영웅 페르난도 이에로(당시 나이 36세, 임대 후 완전 이적)를 불러들인다. 2003년에는 이브라힘 바(세네갈, 당시 30세), 이반 캄포(스페인, 당시 27세), 그리고 유로2004 우승에 빛나는 그리스 최고 공격수 스텔리오스 기아나코풀로스(당시 29세)의 영입에 성공해 선수단의 면면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다. 2004년에는 리버풀로부터 엘 하지 디우프(세네갈, 당시 23세)를 임대 영입해 이듬해 완전이적시켰고, 2005년에는 일본의 영웅 나카타 히데토시(당시 28세)를 피오렌티나로부터 임대 영입해왔다. 2006년 여름 터키의 페네르바체에서 뛰던 '저니 맨' 니콜라스 아넬카를 다시 프리미어리그로 복귀시키면서 볼턴의 약간 늙은 갈라티코 정책은 정점을 찍는다. 


<볼턴의 2004년 FA컵 결승전 스쿼드. 당시 볼턴은 데이비스의 득점에도 미들스보로에 1-2로 졌다. MVP는 부데바인 젠덴>


 이후 볼턴은 '갈라티코'라는 취지에 부응하듯 아시아 출신 선수 영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나카타를 비롯해 니시자와 아키노리(일본), 알리 알-합시(오만), 안드라닉 테이무리안(이란), 이청용(한국)이 아시아를 대표해 볼턴에 합류했다. 결과적으로 볼턴의 '늙은 갈라티코'는 대성공을 거뒀다. 월드스타의 영입으로 언론 주목도도 높아졌다. 성적도 일취월장했다. 볼턴은 2004/2005시즌을 6위로 마감하며 UEFA컵(현 유로파리그) 진출권까지 획득하며 '유러피안 클럽'으로 우뚝 섰다. 이후 가트사이드 회장은 알리다이스 감독에게 파격적인 10년 계약을 선사했다. 가트사이드 회장은 클럽의 실정에 잘 맞는 플랜과 추진력으로 볼턴의 성공을 이끌었다.   
 
 QPR의 2012년은 볼턴의 1999년을 닮았다. 아니 오히려 더하다면 더했지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볼턴의 '늙은 갈라티코'는 약 6년에 걸쳐 이뤄졌다. QPR의 폭풍 영입은 올시즌이 화룡정점이다. 지난해 과거 잉글랜드 대표의 일원 숀 라잇 필립스, 키어런 다이어를 각각 맨체스터 시티와 웨스트햄에서 영입했다. 올해 맞이한 새 식구들은 나열조차 숨차다.  과거 리버풀과 마르세유의 에이스 지브릴 시세, 삼사자 군단의 공격 첨병이었던 앤디 존슨, 풀럼의 바비 자모라(박지성, 라잇 필립스까지 이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81년생이다)를 불러들이며 공격진을 순식간에 포화상태로 만들었다. 허리에서는 박지성, 삼바 디아키테와 더불어 레알 마드리드에서 주전 경쟁에 밀린 에스테반 그라네로와 리그앙의 허리 중추 스테판 음비아를 사들였다.    

 수비라인도 안톤 퍼디나드 빼고 싹 바꿨다. 중앙 수비를 보완하기 위해 36살의 뉴질랜드 국가대표 라이언 넬슨을 영입했고, 측면은 파비우(이전클럽 맨유), 보싱와(이전클럽 첼시), 과거 아스널의 왼쪽 풀백 아르망 트라오레 등 주전 경쟁에서 이탈한 빅4 출신으로 채웠다. 골키퍼는 케니의 대체자 로버트 그린의 불안감으로 인해 인터밀란에서 훌리오 세자르를 공수했다. 이쯤되면 이건희 회장의 말대로 마누라 빼고 다 바꾼 셈이다. QPR은 여름 이적 시장에서 하위권팀 치고 파격적인 금액인 1700만 파운드를 지출했다. 그러는 동안 스쿼드는 계속 진화했다. 존슨, 넬슨, 보싱와 등 이전 팀에서 밀려난 낙엽줄의 합류는 실속면에서 다소간에 의문이 든다. 설상가상으로 도슨과 카르발류의 임대 가능성도 낮아졌다.  


<그라네로는 지난 시즌 무리뉴의 밑그림 중 하나였다. 17경기(선발 7경기)에 출전해 레알의 리그 우승에 일조했다> 


 QPR은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의 리더십하에 지금은 빛 바랜 보석들을 비교적 싼 값에 사 모았다. QPR이 지난 시즌 강등권을 겨우 탈출했고,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슈퍼스타의 영입은 나쁘지 않다. 다만 엄청난 폭풍영입 속에서 얼마나 실속을 챙길수 있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다. QPR은 과감한 투자의 결실을 맺어야 한다. 이번 시즌 강등이라도 된다면 다시 치열한 챔피언십을 거쳐야한다. 수익모델이 하나 줄어든다. 모험적인 투자는 부채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볼턴이 재정이 악화돼 2007-2008시즌 '늙은 갈라티코'의 마지막 기수였던 니콜라스 아넬카를 팔았듯, QPR도 보석들을 정리해야할 시기가 올 수 있다. 볼턴도 당시 부침이 있었지만 강등권 전력에서 서서히 팀 순위를 끌어올렸다. QPR의 상황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QPR도 두, 세 시즌 정도 기반을 다지고 반등을 노리는게 현실적이다. 당시 볼턴은 조르카예프와 오코차가 여러번 팀을 구했다. 특히 오코차가 영입된 2002-2003 시즌 볼턴은 30라운드까지 강등이 확정돼 보였다. 볼턴의 마법은 30라운드부터 나왔다. 볼턴은 그때부터 5승 3무 1패의 괴력을 발휘하며 승점 2점차로 간신히 17위를 차지했다. 그 5승 중 4승을 만들어낸 결승골이 오코차로부터 나왔다. 

 투박한 QPR에 그라네로가 도착했다는 사실은 희망적이다. 한국 언론은 QPR의 후속 영입을 두고 '박지성의 지원군' 이라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편향적인 견해다. 구심점은 그라네로가 될 가능성이 높다. QPR에서 조르카예프와 오코차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는 그라네로와 박지성이다.(신기하게도 네 선수는 포지션상으로도 비슷하다) 영국의 전술가 마이클 콕스도 "QPR의 가장 놀라운 영입은 그라네로"라고 밝힌바 있다. 그라네로는 보다 복합적인 미드필더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분류하기도 애매하고 홀딩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중원의 어느지역에서나 평균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긴 하지만 말이다. 일면 아르테타와 비슷하다. 그라네로는 어찌보면 QPR에 가장 필요한 미드필더다. QPR은 미드필더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 중원에서 끊기는 모습이 잦다. 그런 면에서 그라네로의 간결한 볼 배급 능력은 QPR의 빌드업에 플러스 요소다. 그라네로는 뛰어난 크리에이터는 아니다. 패서에 가깝다. 공수지원과 링커의 역할에 더 능하다. 그런면에서 QPR은 루카 모드리치처럼 보다 앞선 위치에서 마법을 보여줄수 있는 자원의 영입이 아쉽다.  

  결국 QPR의 지향점은 과거의 볼턴이어야 한다. 아직 초반이지만 중위권 진입도 벅차다는 점을 감안할때 현실적인 목표는 '보다 넉넉한 강등권 탈출'이다. 적어도 지난 시즌처럼 마지막 라운드의 상황으로 운명이 갈리는 불가항력적인 사태는 막아야 한다. QPR의 표면적인 행보는 이미 '1999 볼턴' 이상이다. 이제 기대할 건 내용이다. 재료는 어느정도 갖춰졌다. 요리는 감독의 역량이다. 과연 마크 휴즈는 샘 알리다이스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참고 자료: 프리미어리거 영웅전, 위키피디아, 마이클 콕스 블로그>

덧글

  • Somos Real 2012/09/12 03:42 # 답글

    지금까지 보여준 QPR의 행보는 쏟아 부은 머니 대비 매우 절망적입니다. 첫술에 배부를순 없겠지만 최소한 잔류는 해야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골을 넣어주는 스트라이커를 사왔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저렴한 가격에 한단계 내려온 A급도 좋지만) 대런 벤트나, 데포같은. 스완지:선더랜드전에 경기내내 밀렸음에도 스티븐 플레쳐의 두 골로 비기는걸 보고 든 생각이네요.
  • Somos Real 2012/09/12 03:43 # 답글

    아무튼 볼튼을 회자시키면서 쓰신 칼럼 잘 읽었습니다. 재밌네요.
  • 아우라 2012/09/17 16:29 #

    저도 소모스님과 비슷한 생각입니다ㅎㅎ 아무래도 큐피알이 영입한 골잡이들의 공통점은 과거 영광에 비해 하향세로 접어드는 공격수라는 점입니다. 그래도 보스로이드 등 기존의 공격진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님 말씀대로 첫술에 배부를순 없겠죠.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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