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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호 크로아전 공격 조합 '비효율의 전형' 축구 종합



간만에 시원하게 졌다. 하마터면 최강희 감독도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얻을뻔 했다. 차라리 이렇게 지면 낫다. 배울게 많으니. 배알이 꼴린 건 크로아티아가 사력을 다해 뛴 것 같진 않다는 점. 그들은 필요한 양 만큼의 패스를 시도했음에도 지나치리만큼 많은 골을 넣었다. 반면에 우리는 뭔가 많이 뛴 것 같긴 한데 문자 그대로 뛰어 다니기만 한 느낌이다. 비판의 회초리를 들어 말하자면 크로아티아는 '축구'를 했고 대표팀은 '런닝'을 했다. 대표팀의 비효율은 지난해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에 이어 이번 친선전에서도 이어졌다. 필자는 이 글에서는 특히 공격 부문에서의 움직임을 살펴 보고 싶다.




1. 왼쪽 날개는 어디로? 측면 불균형의 과잉

전반에 우린 왼쪽 날개를 상실했다. 최근 대표팀 경기 중 측면 불균형이 가장 심했던 경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손흥민이 4-1-4-1의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나왔으나, 그의 움직임은 중앙에 가까웠다. 함부르크에서 오른쪽에 익숙한 손흥민을 그렇게 배치 시킨건 어쩌면 실험적인 성격에서다. 지동원과 기성용도 손흥민의 동선에 영향을 미쳤다. 지동원은 좌우로 와이드하게 벌려 플레이했다. 손흥민이 중앙으로 진입할 때 지동원은 적절한 부연 움직임을 가져갔다. 기성용도 마찬가지다. 손흥민이 중앙으로 꺾어 들어가면 기성용이 왼쪽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는 어쩌면 현대축구에서 교과서적인 움직임이 된 포지션 체인지의 적극적인 실천일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러한 콤비네이션은 잘 맞아 들어가지 못했고 왼쪽 날개는 무주공산이 됐다. 오른쪽 이청용만이 꾸준했다. 다만 크로스의 정확도가 아쉬웠다.

후반 최강희호는 측면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중점적인 변화는 '좌보경 우청용' 공식을 재설정한 것. '좌청용 우보경'으로 다른 방식의 공격 루트를 노렸다. 김보경으로 하여금 왼쪽 본연의 임무는 물론, 중앙으로 꺾어 들어간 후 슈팅 지원, 원투 패스를 통한 기회 창출 등을 노렸지만 세밀함의 부족으로 큰 효과를 보진 못했다. 하지만 시도만으로도 의의는 있다. 후반전 투입된 최철순의 과감한 공격지원으로 우측 공격을 활기를 띠었다. 역시 아쉬운 건 좌측면이다. 첫 출전에 긴장한 탓일까. 최재수는 리그에서의 파괴력과 모험성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승기가 무언가를 보여주기엔 시간적, 마음적으로 부족했다. 이는 결국 좌우 공격의 불균형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오른쪽과 붙게 되는 크로아티아의 스트리니치쪽은 몇 번의 미스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공략하기 유리했던건 스르나 쪽이다. 스르나는 전반부터 거의 윙처럼 올라왔다. 그러면서 크로아티아는 스르나의 빈 공간을 나머지 수비수 셋이 줄줄이 채우는 변형 스리백에 가까운 전형을 펼쳤다. 스르나의 전진으로 최재수의 수비 부담이 가중됐지만 오히려 다른 쪽에서의 지원을 통해 좌측에서 활로를 뚫을 필요도 있었다. 




2. 모든 공격수가 폭넓은 동선을 가져갈 필요는 없다. 

최근 최강희호, 아니 그뿐 아니라 많은 축구경기들을 보면 제로톱이 필수 불가결한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은 것 같아 유감이다. 제로톱은 듣기엔 쉽지만 사실 무척이나 난해한 전술이다. 선수 개개인이 완벽에 가까운 개인 전술과 기술로 무장해야 함은 기본이다. 톱니바퀴 같은 '티카타카'로 숙성시키기 위해선 엄청난 시간이 요구된다. 감독이 패싱 축구의 철학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도 장기 연습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대표팀의 특성상 더욱 어렵다. 최근 대표팀 공격 조합과 그것이 맞물려 들어가는 움직임을 보면 '제로톱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제로톱을 안 쓴다고도 말하기 힘들다. 한마디로 어정쩡하다. 부여받은 역할의 배분이 그라운드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느낌이 든다. 메시, 이니에스타, 사비는 과장 좀 보태면 그냥 하나의 유기체다. 아메바처럼 패턴을 수가지로 변형해 가며 수비의 빈틈을 파고 들어간다. 하지만 우린 아니다. 라우드럽의 스완지나 브랜단 로저스의 리버풀 수준의 티키타카였더라도 따라해 볼 법은 하다.

때로는 전통적인 방법이 현대적인 그것보다 나을때도 있다. 실험이라면 할 말은 없겠지만 최근 대표팀의 공격 조합에는 '스타일'이 없다. 공격진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최전방의 플랫4'를 보는 기분이다. 최전방도 일자다. 종은 없고 횡만 존재한다. 라인만 그러하면 희망이라도 있을진데, 패스조차도 횡패스가 압도적이다. 크로아티아의 모드리치처럼 '종패스 마스터' 역할이 없다. 모드리치는 페넌트레이트 지점에서의 전진패스로 우리의 최종라인을 무너뜨렸다. 반면 우린 지동원, 손흥민이 횡과 사선으로는 연결돼도 종적으로는 잘 연결되지 않았다. 상대 수비라인을 파고드는 움직임에는 라인을 부수는 패스들이 선행돼야 한다. 그럼 그걸 누가해야 하나. (날렵하고 감각적인 모드리치를 보면 과거 윤정환이 그립다.) 구자철은 창의적으로 패스를 뿌려줄 수 있는 선수다. 지금처럼 제로톱을 쓰느니 지난 아시안컵때 히트쳤던 지구특공대 조합이 더 괜찮을 것 같다. 현재 그 두 선수가 같은 소속팀이라는 것도 좋은 조건이다. 손흥민도 이날 연계는 부족했지만 가능성은 보였다. 하지만 그는 측면에서 중앙으로 쇄도할 때 더 위력적이다.   

후반 이동국과 박주영도 아쉽다. 이들은 명목상 투톱일 뿐, 처진 움직임을 보였다. 이동국과 박주영 모두 연계에 능한 선수지만 이날은 자주 끊겼다. 둘 중 하나는 다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모두가 이타적이려 했다. 구자철이 전반보다 더 수비 역할에 집중했기 때문에 박주영이 따라 빠질 필요는 없었다. 반대로 크로아티아는 이걸 잘했다. 마지막 믈라덴 페트리치가 골을 넣을때 옐라비치가 뒤로 빠졌다. 그리고 페트리치가 침투해 만들어 냈다. 나란히 있던 크로아티아의 투톱이 일순간에 4-4-1-1에서 1-1의 역할을 나눠가졌다. 이동국과 박주영에게도 이런 융통성이 필요했다. 아니면 다른 선수들이 산발적으로 빠져 들어가야 하는데 김보경을 제외하곤 그것도 미미했다. 모든 공격수가 폭 넓은 움직임을 가져갈 필요는 없다. 모두 이타적일 필요도 없다. 이동국은 보다 깊숙이, 박주영은 2선에서 넓게 뒤를 받히며 빠져 들어가는 루트로 공격의 깊이를 창출해야 했다. 공격의 공격진엔 두 명의 루니 보다 한 명의 루니와 한 명의 반페르시를 있는게 더 효율적이다. 마찬가지로 빌드업에서는 맨유처럼 와이드한 면이, 박스에서는 바르샤 DNA가 요구된다. 물론 아직은 꿈 같은 얘기긴 하다.  



3. 예상 가능한 단조로운 공격 패턴

이날의 대표팀 공격에 제목을 달자면 정말 '참을 수 없는 공격의 단조로움'으로 표현해도 될 듯하다. 말 그대로다. 이날 경기를 히트맵을 도출하면 오른쪽이 피바다로 물들 것이다. 전반전 오른쪽에는 이청용만 보였다. 가끔씩 손흥민이랑. 신형민도 준수했다. 후반전 최철순은 독기 품고 나온 것 같다. 크로스도 날카로웠다. 김보경은 종종 볼터치가 길었지만 왕성했다. 나열하자니 다 오른쪽이다. 어찌 보면 1번이랑 카테고리가 같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극심한 불균형, 그리고 단조, 권태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측면 옹호국이긴 하지만 이날 중앙쪽 패턴은 가뭄이었다. 구자철과 손흥민이 중앙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낼수 있는 선수지만 이날 구자철은 안정에 중점을 뒀고 손흥민도 크로아티아의 견고한 중앙을 홀로 뚫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A팀 경기에서는 리그 경기와 다른 경험이란게 더 필요할 것 같다. 

최재수의 왼쪽은 아쉽다. 최재수는 원래 그렇게 새가슴이 아니다. K리그 클래식에서 최재수의 거침없는 돌파에 이은 크로스는 호쾌하기 그지 없었다. 다르게 분류되지만 박규선, 최효진과는 또 다른 맛이 있는 선수다. 스완지의 기성용과 벤 데이비스의 콤비네이션을 기대했던 탓일까. 최재수가 더욱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윤석영이 이날 명단에 포함돼 있었으면 최강희 감독은 후반전 또 다른 리트머스지를 시험관에 넣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는 최재수 개인으로선 더욱 아쉽게 됐다. 깊게 올라온 스르나에 대한 마크를 생각한다면 "그래도 첫 경기잖아"하는 위로만을 남기고 싶다. 

어쨌든 최재수의 버로우, 그리고 중앙에서의 강강수월래식 볼 돌리기로 끝나버린 중원의 연결 등은 공격 옵션을 제한시켰다. 측면은 공격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지만 막히면 지나치게 단순해진다. 중앙보다 우연성이 많기 때문이다. 중거리슛도 신통치 못했다. 신형민의 슈팅은 날카로웠지만 그것을 제외한 다른 종류의 슈팅 대부분은 '공격이 막혀서 어쩔수 없이 때린'듯 했다. 공격이 단조롭냐 다양하냐의 차이는 이날 모드리치 같은 유형의 선수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강희호가 단조로움을 탈피하려면 중원을 푸는 열쇠를 찾아야 한다. 

    

덧글

  • Stracci 2013/02/08 02:06 # 답글

    크로아티아는 흐름을 잘 읽었고 한국은 흐름을 타지 못했네요
  • 아우라 2013/02/11 14:59 #

    그 흐름의 중심엔 모드리치가 있었네요. 한국은 구자철이 이런 역할을 해줄수 있는 선순데 크로아전 역할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 하워드휴즈 2013/02/12 00:43 # 답글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저는 후반전만 봤는데..한국에서 4-4-2는 좀 아니다라는 생각이많이 들더군요.. 중미 2명이 상대팀 미들을 압도할 수준이 아니라면 차라리 3미들을 기용해서 수적 우위라도 가져가는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이

    2톱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고 보구요 ㅋ
  • 아우라 2013/02/13 15:05 #

    잘 보셨다니 감사합니다ㅎㅎ

    투톱이 너무 어정쩡하지 않던가요? 박주영은 거의 중미처럼 움직였고요. 모나코 시절 박주영이나 전북의 이동국 같은 몰아주기 효과가 할텐데 투톱 전술은 두 선수 모두의 장점을 훼손시킨 것 같습니다. 차라리 손흥민을 소속팀에서처럼 프리롤로 쓰는 방법도 고려해 보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제로톱처럼 간다면 굳에 중원에 미들 셋을 세우기보단 박주영이나 이동국으로 하여금 허리 지역을 커버하게 해 수적 우위를 가져가는 방법이 있는데 어쩌면 최강희 감독이 후반에 박주영으로 하여금 그런 지시를 내렸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박주영 움직임이 이동국의 배후를 감싸는 동선 형태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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