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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백' 기성용은 라우드럽의 믿음 2012-2013 EPL





이젠 낯선 곳에 서있는 그를 더이상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스완지 키' 기성용이 25일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브래드포트와의 캐피탈 원 컵 결승전에서 센터백으로 무난한 활약을 펼쳤다. 이날 스완지시티의 핵심적인 전술 변화는 단연 기성용의 역할 조정이었다. 덧붙이자면 데 구즈만이 기성용 자리로 옮긴 정도인데 데 구즈만은 종종 이 자리에 서기에 이는 전술의 키 포인트라 하기엔 다소 약한 감이 있다. 이런 점에서 라우드럽 감독의 기성용 센터백 카드는 처음은 아니지만 역시 깜짝 기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젠 기성용이 종종 다른 포지션에서 뛴다고 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기성용을 센터백으로 돌린건 신뢰를 바탕으로 한 라우드럽의 용단이었다. 어느 팀인들 그러겠느냐만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중앙 수비수 자리에 아무나 둘 수 없는건 상식적인 일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라우드럽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그것도 올시즌 가장 중요한 경기인 리그컵 결승전에서 말이다. 믿음이 없으면 힘든 일이다.    

사실 팀 사정이 많이 작용했다. 주전 센터백 치코가 아직도 발목 부상 중이다. 다른 센터백 자원으로는 게리 몽크와 바틀리가 있는데 이 조합은 직전에 열린 리버풀과의 리그 경기에서 0-5 참패 원인이 됐다. 그래도 현지 언론들은 경험이 적은 바틀리 보다는 베테랑 몽크가 애슐리 윌리엄스와 호흡을 맞출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라우드럽은 경기 감각이 무뎌져 있는 몽크보다 기성용을 센터백 자리에 배치했다.




라우드럽이 기성용에게 기대한 것은 단순 수비만이 아닌 듯하다. 190cm에 육박하는 기성용은 제공권은 물론 센터백 치고는 빠른 발을 갖고 있다. 몽크의 기본적인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면 라우드럽이 기성용에게 원하는 건 그 이상의 것인데 그건 바로 수비 이후 공세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즉 '빌드업'과 '피딩'이다. 좌우전방으로 가까운 패스를 이어나가며 만들어가는 전개 혹은 때때로 앞선의 레온 브리튼과 데 구즈만을 생략하고 바로 연결할 수 있는 정확한 롱볼의 형태. 이를 해줄수 있는 선수가 기성용인 것이다. 몽크의 기능을 어느정도 흡수하면서 치코의 향수를 지울 수 있는 존재. 바틀리보다 안정적이고 애슐리 윌리엄스와 호흡을 맞춘 경험도 있다.  

기성용은 에버튼과의 EPL 5라운드에서 윌리엄스와 잠깐 호흡을 맞췄다. 당시 주축 센터백 앨런 테이트가 최악의 경기력을 보였고 후반 12분 레온 브리턴이 들어오면서 기성용이 센터백 자리에서 플레이한 바 있다. 테이트의 기용은 어쩔수 없던 측면이 컸다. 치코가 직전 경기인 선더랜드전서 퇴장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기성용의 EPL 센터백 데뷔전은 그렇게 우연하게 이루어 졌지만, 선수 성향을 꿰뚫어 팀에 대입해 나가는 라우드럽의 성향상 기성용의 이동은 '세컨드 포지션의 전략적 포지셔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라우드럽의 계산 안에 있는 필연적 이동인 셈이다.   

당시 라우드럽 감독의 멘트에서도 확일할 수 있다. 라우드럽은 기성용을 센터백으로 돌린 이유에 대해 "테이트보다 발이 빠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테이튼은 에버튼의 기민한 공격수들에게 뒷공간을 빈번하게 내줬다. '센터백' 기성용은 한동안 뜸하다 크롤리타운과의 캐피탈 원컵 3라운드에서는 재가동 됐다. 전문 센터백인 테이트가 외려 벤치로 밀려났다. 스완지는 크롤리타운에게 2골을 내주긴 했지만 3-2로 힘겹게 이겼다. 치코와 윌리엄스가 모두 빠진 상황에서 몽크와 함께 짝을 이뤘는데 라우드럽은 이때 이미 기성용의 센터백 역할을 상정한 것 같다.  


<기성용이 센터백으로 출전한 두 경기. 에버튼전 라인업(위)과 크롤리시티전 라인업>


기성용의 수비수 임무는 EPL서는 세번째이긴 하지만 완전히 생소하지는 않다. 기성용은 2007년 캐나다에서 열린 U-20 월드컵 대회에서 쓰리백 중 왼쪽 스토퍼를 본 적이 있다. 직전 체코전에서 부상당한 박정혜를 포함해 대한민국 센터백 자원 세명이 전부 부상이어서 최철순 같은 풀백들이 스위퍼를 볼 만큼 열악했다. 하지만 공격 재능을 뽐냈던 FC서울과 홀딩에 치중했던 셀틱을 거쳐 스완지에서는 중앙 이하를 넘나 들면서 그 역할이 점점 박스 가까이 내려가고 있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스쿼드에 신중과 고민을 기해야 하는 오늘과 같은 경기에서 선수가 잘해준다는 건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이다. 기성용은 전반 37분 거친 태클로 경고를 받긴 했지만 전문 센터백이 아닌 것 치고는 잘한 경기였다. 1분전에는 상대 공격수를 앞에 두고 스탠딩 태클을 가해 볼을 탈취했다. 전반 17분에는 앙헬 랑헬에게 손짓을 하며 라인을 조정하는데도 적극적이었다. 경기 초반에는 오른쪽 라이트백에 가까운 움직임을 가져갔다. 윌리엄스가 뒤를 받친 상태에서 전방에 패스를 공급하는 역할도 나쁘지 않았다. 기성용은 후반 17분 몽크와 교체되기까지 무난한 활약을 펼쳤다.

기성용의 포지션 변화에 민감하거나 우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기성용의 다양한 기용은 긍정적으로 수렴되고 있다.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진화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세르히오 라모스가 그랬고 마스체라노도 그랬다. 이들은 새로운 위치에서 더 나은 전문성을 만들어 냈고 완전히 적응해 뿌리 내렸다. 캐릭과 필 존스는 역할에 있어 유연하다. 야야 투레는 미드필더의 기존 통념을 깨 부수고 있는 것 같다. 기성용은 제라드를 추구하지만 작금의 상황에서 야야 투레는 제라드보다 공수에서 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공한 선수들의 용도 변경과 포지션 변천사를 떠올려보면 기성용의 외도가 나쁘지 만은 않다. 그런면에서 '센터백' 기성용은 곧 라우드럽의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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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스뜨라치 2013/02/25 14:55 # 답글

    기성용 선수가 아마 U-20 대표팀에서 센터백으로 뛴적이 있었죠.
  • 아우라 2013/02/25 15:16 #

    그때 당시 대표팀은 쓰리백이었는데 왼쪽부터 차례대로 기성용-최철순-배승진이 호흡을 맞췄었죠ㅎㅎ 미드필더 중에는 가장 체격 조건이 좋고 안정적이면서 동시에 공격 시발점 역할까지 해줄 수 있었기에 당시로선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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